10. 10. 12.

오징어와 백로

烏 水邊行   오징어가 물가를 돌다가
忽逢白鷺影   갑자기 백로 그림자를 보았는데
皎然一片雪   새하얗기 한 조각 눈결이요
與水同靜   눈에 빛나기 잔잔한 물과 같아
擧頭謂白鷺  머리 들고 백로에게 말하기를
子志吾不省   그대 뜻을 나는 모르겠네
旣欲得魚    기왕에 고기 잡아 먹으려면서
云何淸節秉   무슨 멋으로 청백한 체 하는가
我腹常貯一囊墨   내 배에는 언제나 한 주머니 먹물 있어
一吐能令數丈黑   한 번만 내뿜어도 주위가 다 시커멓기에
魚目昏昏咫尺迷   고기들 눈이 흐려 지척 분간을 못하고
掉尾欲往忘南北   꼬리 치며 가려 해도 남북을 분간 못하지
我開口呑魚不覺   내가 입으로 삼켜대도 고기들은 깜박 몰라
我腹常胞魚常惑   나는 늘 배부르고 고기는 늘 속는다네
子羽太潔毛太奇   그대는 깃이 너무 희고 털도 너무 유별나서
縞衣素裳誰不疑  위 아래가 흰옷인데 누가 의심 안하겠나
行處玉貌先照水   간 곳마다 고운 얼굴 물에 먼저 비치기에
魚皆遠望謹避之   먼 데서 바라보고 고기 모두 피해가니
子終日立將何待   온종일 서 있은들 그대 무얼 기대하리
子脛但酸 常飢   다리만 시근시근 배는 늘 고프지
子見烏鬼乞其羽   까마귀 찾아가서 그 옷을 빌어 입고
和光合 從便宜   본색일랑 감춰두고 적당하게 살아가소
然後得魚如陵阜   그리하면 고기를 산더미같이 잡아
子之雌與子兒   암컷도 먹이고 새끼들도 먹일거네
白鷺謂烏    백로가 오징어에게 말하기를
汝言亦有理   네 말도 일리는 있다마는
天旣賦予以潔白   하늘이 나에게 결백함을 주었으며
予亦自視無塵滓   자신이 보기에도 더러운 곳 없는 난데
豈爲充玆一寸    어찌하여 그 작은 밥통 하나 채우자고
變易形貌乃如是   얼굴과 모양을 그렇게야 바꾸겠나
魚來則食去不追   고기가 오면 먹고 달아나면 쫓지 않고
我惟直立天命俟   꼿꼿이 서 있으며 천명대로 살 뿐이지
烏 含墨 且嗔   오징어가 화를 내고 먹물을 뿜으면서
愚哉汝鷺當餓死   멍청하다 너야말로 굶어죽어 마땅하리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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