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공부해 봐야 하겠지만 새가 나오는 한시나 그림들은 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기원,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한탄, 주군에 대한 충심, 자신이 처한 상황 등에 대한 심경을 드러낸다.
생태적 관찰이 아주 구체적인 한시나 그림도 많지만 실재 새들의 생태와는 좀 다른 예도 있다. 작가가 새를 관찰하는 데 한편으로는 치열한 생존의 모습을 인간중심적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다.
제비(House Swallow)
다산 정약용 (제비의 하소연) - 본래 제목은 없다.
제비가 강남 갔다 처음 와서는
지지배배 쉼없이 조잘거리네.
말 뜻은 비록 분명찮으나
집 없는 근심을 하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늙어 구멍 많은데
어째서 거기엔 머물질 않니."
제비가 다시금 조잘대는데
마치 내게 대꾸라도 하는 듯 하다.
"느릅나무 구멍엔 황새가 와서 쪼고
홰나무 구멍엔 뱀이 와 뒤집니다."
다산이 쓴 이 시에서는 백성들을 제비에 비유해서 갈 곳 없거나 수탈을 당하는 백성의 현실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강재항(1689-1756) 의 (현조행)
사는 집 서북편 모서리에다
제비가 그 위에 둥지 틀었네.
기르는 새끼가 다섯 마리라
둥그런 둥지가 가득하구나.
암수가 나란히 돌아 날다가
화답하여 울면서 오르내리네.
고양이가 문가에서 숨어 있다가
몰래 엿봐 멋대로 잡아 죽였지.
수컷이 암컷을 잃고 나서는
외로이 혼자 날며 서러워 했네.
깃털도 부러지고 추레해져서
제 짝 잃고 상심한 사람 같더니,
어느새 새 짝 찾아 함께 살면서
짝이 좋아 혼자서 펄펄 날았네.
그 새끼 갑작스레 죽어 버리니
다섯 마리 발로 차서 모두 던졌지.
입 더듬어 먹은 물건 살펴 봤더니
날카로운 가시가 배에 가득해.
내 마음 이 때문에 구슬퍼져서
한동안 손에 들고 못 놓았다네.
지붕에 불지르고 우물을 덮었다던
옛부터 전하던 말 헛말 아닐세.
하물며 어여쁜 짝과 더불어
새끼의 죽음을 속이려 드니.
이 모두 미물이기 때문일텐데
그때엔 어이해 못 깨달았나.
미물도 오히려 이와 같거니
하물며 사람의 같잖은 꼴이랴.
뒷 사람에게 사죄하노니
경계하여 삼가서 잊지를 말라.
이 고시같은 경우는 제비의 생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자신이 주관적으로 해석한 것 같다.
수컷과 암컷이 새끼 다섯을 키우고 있었는데 고양이가 암컷을 죽이자 수컷이 다른 암컷과 정분이나서 새끼에게 가시를 먹여 죽인 것 처럼 묘사되어 있다.
생태적으로 볼 때 제비는 두 번까지 번식을 할 수 있고 암컷 없이 수컷 혼자 새끼 다섯을 키우긴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새끼들은 성장하더라도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거나 성장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죽게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을 어미는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그래서 다른 암컷을 빨리 찾아 번식을 새로 하는 것이 수컷 제비의 입장에선 당연한 본능이다.
비정한 게 아니라 제비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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